“회사 자료를 외부로 전송하거나 제3자에게 넘긴 것도 아니고, 재택근무 시스템에 접속해서 화면을 휴대폰으로 촬영했을 뿐인데 영업비밀 ‘유출’로 처벌받을 수 있을까요? 그리고 외국 회사 이직에 실패했다면 외국사용 목적이 없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영업비밀 유출 분쟁
피해회사의 재택근무용 원격접속시스템에 접속하여 영업비밀 및 국가핵심기술 자료를 열람하면서 휴대폰으로 촬영한 피고인에 대하여, 영업비밀 부정취득 및 무단유출, 국가핵심기술 부정취득 및 무단유출을 모두 유죄로 인정하고 징역 1년 6개월 및 벌금 1,000만 원을 선고하였습니다(서울고등법원 2023. 7. 14. 선고 2023노999 판결). 1심이 유출 부분을 무죄로 판단한 것을 파기하고 유죄로 뒤집은 이 판결이 어떤 법리를 제시하였는지, 지금부터 핵심 쟁점을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이 글을 끝까지 읽으시면 다음 정보를 얻으실 수 있습니다.
① 부정경쟁방지법상 영업비밀 ‘유출’의 의미 — 제3자 전달이나 해외 반출 없이도 유출죄가 성립하는 이유
② 재택근무 시스템을 통해 허용된 범위인 ‘열람’을 넘어 촬영한 행위가 왜 부정취득과 무단유출 모두에 해당하는지
③ 외국 경쟁사 이직 지원 과정에서 자료를 촬영한 경우 외국사용 목적 또는 고의가 인정되는 기준
④ 산업기술보호법상 국가핵심기술 유출죄와 부정경쟁방지법상 영업비밀 유출죄의 관계 및 처벌 수위
⑤ 기업이 영업비밀과 국가핵심기술을 보호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보안 관리 체계의 실무적 의미

1. 사실관계 요약 — 피고인이 직면한 위기
가. 사건의 경위
피고인은 반도체 파운드리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엔지니어로 피해회사에 재직하던 중 2021. 12. 31. 퇴사 의사를 밝혔습니다. 이후 피고인은 2022. 1. 10. 미국에 본사를 둔 외국 경쟁사 F의 ‘SPICE 모델링’ 분야에 지원하였다가 불합격 통보를 받자, 2022. 1. 16. 일요일 휴가 중임에도 피해회사 사무실에 출근하여 피해회사의 전자문서관리시스템(EDM)에 올라와 있는 영업비밀 자료 및 자신이 새로 업로드한 국가핵심기술 관련 자료 총 28개의 링크를 자신의 사내 이메일로 전송하였습니다.
다음 날인 2022. 1. 17. 피고인은 자신의 집에서 피해회사의 재택근무용 원격접속시스템(RBS)에 접속하여 이메일을 열고 링크를 통해 파일을 열람하면서 휴대폰으로 이를 촬영하였습니다. 피고인은 같은 달 18. F의 다른 부서에 추가 지원하였고, 19. 이민 절차를 검색하는 등 이직을 적극적으로 시도하였습니다. 피해회사가 이를 신속히 적발하여 내부조사를 진행하였고, 피고인은 이 사건 휴대폰을 파쇄·소각하여 증거를 훼손하였습니다.
나. 당사자들이 직면한 위기
| 구분 | 내용 |
|---|---|
| 피고인의 위기 | 재택근무 시스템을 통한 열람 및 촬영 행위가 영업비밀 부정취득·무단유출 및 국가핵심기술 부정취득·무단유출에 해당한다는 혐의로 기소되어 형사처벌 위기에 처한 상황 |
| 피해회사의 위기 | 천문학적 비용을 투자하여 개발한 국가핵심기술이 외국 경쟁사로 유출될 위험에 처한 상황 |
| 핵심 쟁점 | 제3자 전달 없이 촬영만 한 행위가 ‘유출’에 해당하는지, 이직에 실패한 경우에도 외국사용 목적·고의가 인정되는지, 재택근무 시스템을 통한 열람 권한이 있는 자의 촬영이 ‘부정취득’에 해당하는지 |
2. 핵심 쟁점 Q&A
Q1. 부정경쟁방지법상 영업비밀 ‘유출’이란 무엇인가요? 제3자에게 전달하거나 해외로 반출하지 않아도 유출이 성립하나요?
A. 법원은 부정경쟁방지법 제18조 제1항 나목에서 정하는 ‘유출’은 영업비밀을 영업비밀 보유자가 지정하거나 이동을 승인한 장소 밖으로 내보내는 행위를 의미하고, 여기에 영업비밀을 제3자에게 전달하거나 해외에 유출될 것 또는 그와 유사한 위험이 있을 것은 요구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습니다(서울고등법원 2023. 7. 14. 선고 2023노999 판결).
이 판단의 근거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부정경쟁방지법 제18조 제1항은 영업비밀을 제3자에게 ‘누설’하는 행위와 지정된 장소 밖으로 무단으로 ‘유출’하는 행위를 별도의 구성요건으로 구별하고 있으므로, 유출의 의미를 제3자 전달 위험이 있는 경우로 제한할 수 없습니다. 둘째, 같은 조 제2항은 외국사용에 대한 고의가 없는 경우에도 동일한 ‘유출’ 행위태양에 대하여 처벌하도록 하고 있으므로, 제1항의 ‘유출’을 해외 유출 위험이 있는 경우로 제한하여 해석할 수도 없습니다. 2019. 1. 8. 개정으로 ‘유출’ 행위가 처벌 대상에 추가된 것은 처벌의 공백을 없애기 위한 것이었습니다(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18조 제1항 나목).

Q2. 재택근무 시스템을 통해 열람 권한이 있는 자료를 촬영한 행위가 왜 ‘부정취득’에 해당하나요?
A. 법원은 피고인이 재택근무용 원격접속시스템(RBS)을 통해 시스템에 접속하여 열람하는 방법으로만 재택근무할 수 있도록 승인받은 범위를 넘어, 자료 열람화면을 촬영하여 위 자료의 내용을 피고인의 지배영역으로 옮기고 피해회사의 관리·감독권이 미치지 않는 상태로 만들었다는 점을 부정취득의 근거로 삼았습니다.
피해회사의 보안규정은 RBS 시스템에서 개인 저장매체 사용, 프린터 사용, 화면캡처, 다운로드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었고, 피고인은 매년 이러한 내용의 보안서약서를 작성·제출하였습니다. 피고인에게 허용된 것은 시스템에 접속하여 ‘열람’하는 것뿐이었고, 그 열람화면을 휴대폰으로 촬영하는 것은 허용된 접근권한을 초과하는 부정한 수단에 해당한다고 본 것입니다. 자료의 작성자이거나 접근 권한이 있었다는 사정은 촬영 행위의 부정성을 없애지 못합니다.
Q3. 외국 회사 이직에 실패하였는데도 외국사용 목적이나 고의가 인정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A. 법원은 외국사용 목적이나 고의의 존재를 직접증거가 아닌 여러 간접사정을 종합하여 판단하였습니다. 피고인이 외국 경쟁사 F에 지원하였다가 불합격하자 이 사건 자료를 촬영하고 다음 날 F의 다른 부서에 다시 지원한 점, 촬영한 자료가 피고인이 지원한 F의 직무와 직접 관련된 자료인 점, 촬영 직후 이민 절차를 검색한 점, 이후 지인에게 ‘F 가려다가 접었다’는 취지의 메시지를 보내 아쉬움을 표시한 점 등을 종합하여, 피고인이 F 지원 과정에서 사용하거나 이직 후 관련 업무에 사용할 수 있다는 인식과 목적을 가지고 자료를 촬영하였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이는 대법원이 제시한 법리, 즉 외국사용 목적이나 고의를 증명할 직접증거가 없는 경우 피고인의 직업, 경력, 행위의 동기 및 경위, 산업기술 보유기업과 취득한 제3자와의 관계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사회통념에 비추어 합리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는 원칙에 따른 것입니다(대법원 2018. 7. 12. 선고 2015도464 판결).
Q4. 1심이 유출 부분을 무죄로 판단한 이유는 무엇이고, 항소심이 이를 파기한 근거는 무엇인가요?
A. 1심은 부정경쟁방지법과 산업기술보호법상 ‘유출’이란 해외 유출 내지 이러한 유출과 유사한 위험이 있는 외부로의 유출을 의미한다고 해석하였습니다. 피고인이 F로부터 면접 제안을 받았음에도 지원을 철회한 점, 이 사건 자료를 외부로 전송한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점, 재택근무가 허용되는 RBS 시스템을 통해 자신의 주거지에서 열람하고 촬영한 것이므로 유출로 평가될 정도의 장소적·인적 허용범위를 벗어났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점 등을 근거로 유출 부분을 무죄로 판단하였습니다.
항소심은 이러한 1심의 해석이 잘못되었다고 보았습니다. ‘지정된 장소’는 영업비밀 보유자의 관리·감독권이 미치는 곳으로서 영업비밀 보유자가 본래 영업비밀을 보관하도록 지정한 장소이거나 이동을 승인한 장소를 의미하는데, 피고인이 자료 열람화면을 촬영하여 피고인의 지배영역으로 옮기고 피해회사의 관리·감독권이 미치지 않는 상태로 만든 행위는 이 ‘지정된 장소 밖으로 무단으로 유출’한 것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Q5. 이 사건에서 피고인과 피해회사는 각각 어떻게 위기에 대응하였고, 최종 결과는 어떻게 되었나요?
A. 피고인은 자신이 촬영한 자료의 범위를 최소화하고(순번 1, 6번만 촬영하였다고 주장), 자료의 작성자이자 접근 권한이 있는 자로서 새삼스럽게 영업비밀을 ‘취득’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였습니다. 또한 외국 회사 이직에 실패하였으므로 외국사용 목적이나 고의가 없었다고 다투었습니다. 그러나 피고인은 피해회사의 내부조사가 시작되자 이 사건 휴대폰을 파쇄·소각하여 증거를 훼손하였고, 이 행위 자체가 오히려 촬영 사실과 그 범위를 인정하는 간접증거로 작용하였습니다.
피해회사는 내부 모니터링을 통해 피고인의 비정상적인 자료 접근 행위를 신속히 적발하고 내부조사를 진행하여 형사고소로 이어지게 하였습니다. 항소심은 1심의 유출 무죄 부분을 파기하고 부정취득과 무단유출 모두를 유죄로 인정하여 피고인에게 징역 1년 6개월 및 벌금 1,000만 원을 선고하였습니다. 영업비밀이 실제로 경쟁사에 누설되지 않은 점, 초범인 점 등이 유리한 양형 요소로 고려되었으나, 국가핵심기술 침해의 중대성과 범행 부인 태도가 불리하게 작용하였습니다.

결론
“그렇다면 기업은 영업비밀과 국가핵심기술을 보호하기 위해 무엇을 갖추어야 하고, 임직원은 무엇을 주의해야 할까요?” 이 판결은 재택근무 환경에서 영업비밀 보호의 경계가 어디까지인지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회사 시스템에 접속하여 허용된 범위인 ‘열람’을 넘어 화면을 촬영하는 순간, 그 자료는 회사의 관리·감독권 밖으로 나간 것으로 평가되어 영업비밀 유출죄가 성립할 수 있습니다. 제3자에게 전달하거나 해외로 반출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유출죄의 성립을 막지 못합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보안서약서 징구, 재택근무 시스템의 촬영·캡처 금지 설정, 비정상적 접근 행위에 대한 모니터링 체계를 갖추는 것이 핵심이며, 임직원 입장에서는 허용된 접근 권한의 범위를 엄격히 준수하고 이직 과정에서 회사 자료를 개인적으로 보관하려는 시도 자체가 중대한 형사처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반드시 유의해야 합니다(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18조 제1항 나목).
